실크로드? 가 어려우면 말 그대로 동양과 서양을 잇는 무역길!
실크로드(SILK ROAD) , 즉 우리말론 비단길이다. 근데 이런 말도 다 거창한 수식어일 뿐 풀어서 얘기하자면 동양(아시아권)과 서양(지금의 중동 또는 유럽)을 잇는 하나의 무역길을 일컫는다. 이 무역길의 시작점은 장안. 지금 중국의 서안이라고 할 수 있다.
왜 이길이 무역길로 당시 상인들한테는 각광을 받을 수 있었을까?
시대적으로 고려해보면 답이 나온다. 지금의 무역길은 비행기도 있고, 바다를 가로지르는 배도 있지만, 당시에는 아직 항해도 발달이 안되었던 시절이라 그야말로 발로 뛰는 시대였다.
좀 더 구체적으로 얘기하자면 이런 비단길이 완성되기 전까지는, 이 길로 한발한발 나아가면 어떤 곳이 나올지 어떤 풍경이 펼쳐질지 상상이 안되었던 시대였던 것이다.
이 길의 시초에는 누가 있었던 것일까?
지금 중국의 역사의 흐름엔 한(漢)이라는 나라가 있다. 전한(前漢: BC 206~AD 25) 때 당시 황제였던 한무제는 북방의 흉노족과의 사이가 좋지 않았기 때문에 서쪽으로 향하는 길을 확보할 수 없었다. 이에 서쪽 대월지와 오손과 같은 나라와 힘을 합하여 흉노를 제압하려고 생각했었고, 당시 사신이였던 장건은 큰 포부를 가진 채 그 길에 올랐다.
그러나 흉노족에게 잡혀 허송세월 10년을 보내게 되었다. 그러나 사신이라는 본인의 신분을 잊지 않은 채 길에 다시 오르게 되었고, 파미르 고원 너머에 있는 페르가나(Fergana)국을 거쳐 당초 목적지인 대월지(大月支)라는 나라에 도착하여 동맹을 권유하였지만, 이미 많은 세월이 흘러 대월지국은 동맹을 원치 않았다. 그래서 장건은 대월지국에 머무는 1년 동안 여러 가지 자료를 수집한 후 다시 장안으로 되돌아왔다.
장건은 대월지국과 동맹을 맺는 데는 실패했지만, 그의 경험과 자료를 바탕으로 이때부터 서역길이 열리게 되었고 이 길을 통해 상인들이 서양과 동양을 오가며 비단, 보석, 옥, 직물 등 유형의 산물을 교환했을 뿐만 아니라 불교, 이슬람교 같은 무형의 산물 등도 전달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우즈베키스탄의 부하라나 히바 같은 도시를 가면 먼 길을 오고 갈 동안 상인들과 물건을 싣었던 낙타를 편히 쉴 수 있게끔 만들어놓은 숙소 카라반 시나이를 곳곳에서 볼 수 있다.
이곳에 서서 화려했던 무역의 번성시대를 생각하자니, 상상이 잘 안 가곤 하지만, 옛 풍경을 그려놓은 그림을 보고 있으면 왜 이 길이 중요한 무역로가 됐는지는 알 수 있을 것 같다.